신광태 작가의 서재

올해 김장은 내가 키운 배추로 한다'

해마다 김장철이 돌아오면 저는 배추를 사러 다닙니다.

보통 한 해에 배추 30포기에서 많게는 50포기 정도를 구입합니다. 김장을 많이 하는 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 집에서 먹을 것만 생각하면 이렇게 많은 양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아내가 장녀이다 보니 김장을 하고 나면 친정 식구들에게도 나누어 보내야 합니다. 세 명의 처제에게까지 김치를 보내고 나면 30~50포기의 배추도 사실 넉넉하지 않습니다.

김치는 한 번 담그면 오랫동안 먹을 수 있고,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도 있으니 많이 담그는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한 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배추를 직접 키우면 안 될까?”

사실 이 생각을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닙니다.

농촌에 살면서 텃밭을 가꾸고 있으니 배추 정도는 직접 키워 김장에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배추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해마다 50포기씩 심었지만

제가 해마다 심었던 배추는 대략 50포기 정도였습니다.

숫자만 보면 김장에 충분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50포기를 심었다고 해서 50포기의 배추를 수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올해 심은 김장배추와 무우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 것입니다.

모종을 심었다고 해서 모두 제대로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벌레가 먹기도 하고, 병이 들기도 하고, 물이 부족하기도 합니다. 거름이 부족하면 제대로 크지 않고, 반대로 관리가 잘못되면 잎만 무성하거나 속이 제대로 차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 역시 배추 농사를 지을 때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결국 해마다 50포기 정도를 심었지만, 김장에 사용할 만한 제대로 된 배추는 5포기도 되지 않았습니다.

첫해에는 무농약을 고집했다

처음 배추를 심었을 때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농촌에 살면서 직접 먹을 채소를 키우는데 농약을 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무농약으로 배추를 키워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배추밭에 배추가 자라기 시작하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녀석들이 나타났습니다.

배추흰나비였습니다.

하얀 나비가 배추밭을 날아다니는 모습은 처음에는 꽤나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나비가 배추에 알을 낳고, 애벌레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배추 잎에는 구멍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고, 며칠 지나자 잎이 성한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진딧물까지 달려들었습니다.

결국 첫해 배추 농사는 사실상 실패였습니다.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배추를 키우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구나.”

첫해의 교훈이었습니다.

두 번째 해에는 거름을 소홀히 했다

첫해의 실패를 경험하고 두 번째 해에는 벌레보다 다른 것을 걱정했습니다.

바로 거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실수를 했습니다.

봄에 밭에 퇴비를 넣고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그래도 배추가 자라는 데 필요한 양분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배추를 심은 뒤에는 별도의 거름을 거의 주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배추는 자라기는 했지만 제대로 통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크기도 작았고 잎은 뻣뻣하기만 했습니다. 김장용 배추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농사는 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모종을 밭에 심는 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그 이후에 물과 양분을 적절하게 공급하고 병충해를 관리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농작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 해에는 농약을 비료처럼 생각했다

세 번째 해에는 나름대로 공부를 했습니다.

누군가에게서 농약에도 비료 성분이 들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농약도 두 차례 정도 뿌렸습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배추는 여전히 제대로 크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병충해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농약과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비료는 역할 자체가 다릅니다. 그때는 농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다 보니 이것저것 주워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배추를 키웠던 것입니다.

결과는 또 실패였습니다.

네 번째 해에는 물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그리고 네 번째 해. 이번에는 병충해도 아니고 거름도 아니었습니다.

물을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농촌에서 살다 보면 밭에 물을 주는 일이 생각보다 번거롭습니다. 다른 일을 하다 보면 하루 이틀 미루게 되고, 비가 조금 올 것 같으면 괜찮겠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작물 입장에서는 사람의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물을 필요로 하는 시기에 충분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면 배추는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결국 네 번째 배추 농사도 실패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첫해에는 벌레 때문에 실패했고, 두 번째 해에는 거름 때문에 실패했고, 세 번째 해에는 영양 관리에 대한 잘못된 생각 때문에 실패했고, 네 번째 해에는 물 관리에 실패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실패하고 나니 오히려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제대로 한번 해보자.”

올해는 120포기를 심었다

그래서 올해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올해 김장은 모조리 내가 심은 배추로 한다!”

물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배추 농사를 지으면서 실패한 경험이 워낙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욕심부터 부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120포기를 심었습니다. 50포기를 심어 5포기도 건지지 못했던 사람이 갑자기 120포기를 심었으니 어쩌면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표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120포기 중 절반만 제대로 건져도 성공이다.

60포기 정도의 제대로 된 배추만 수확할 수 있다면 올해 김장은 상당 부분 직접 키운 배추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직접 키운 배추로 김장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배추값이 걱정되는 이유

배추를 직접 키우려고 마음먹은 데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김장철이 되면 배추 가격은 가정의 김장 비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배추뿐만 아니라 무, 고춧가루, 마늘, 생강, 젓갈 등 들어가는 재료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특히 배추 가격이 크게 오르는 해에는 김장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됩니다.

최근에는 중국산 배추를 둘러싼 문제와 먹거리 안전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원산지와 유통 과정에 대한 소비자의 걱정이 커질수록 국산 배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배추 수급이 불안해지거나 작황이 좋지 않으면 김장철 배추 가격이 크게 오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 제가 배추밭을 더욱 정성스럽게 바라보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직접 배추를 키운다고 해서 농사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모종이나 종자, 퇴비, 비료, 물, 농자재 등 여러 가지 비용이 들어갑니다.

게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과 정성입니다. 매일 밭을 들여다봐야 하고, 벌레가 생기지는 않았는지 살펴야 합니다. 흙이 너무 마르지는 않았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결국 직접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아끼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투자하는 일입니다.

배추밭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다

요즘 배추밭을 바라보면 예전과는 마음가짐이 조금 다릅니다.

아직 김장할 때까지는 시간이 남았습니다. 120포기가 모두 제대로 자랄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벌레가 생길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가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물을 잘 줘야 하고 거름도 적절하게 챙겨야 합니다.

농사는 역시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배추 한 포기 한 포기가 소중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제대로 자라지 못했던 배추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밭에 심어놓고 잘 자라겠지 하고 지나쳤다면, 이제는 배추 한 포기를 보면서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물이 부족하지 않을까?”

“거름은 충분할까?”

“벌레가 붙지는 않았을까?”

농사를 몇 년 해보고 나니 농작물이 그냥 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

올해 김장,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아직 결과는 모릅니다. 120포기를 심었다고 해서 120포기의 배추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절반인 60포기를 반드시 수확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난 실패에서 배운 것들을 하나씩 적용해볼 생각입니다. 물도 잘 주고, 필요한 만큼 거름도 챙기고, 병충해도 살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주 밭에 나가 배추를 바라볼 생각입니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올해 가을 배추가 잘 자라서 단단하게 속이 차고, 김장철에 하나둘 수확할 수 있다면 참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배추를 수확해서 아내와 함께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버무려 김치를 담그는 날을 상상해봅니다. 그리고 그 김치를 세 처제에게 한 통씩 나누어 보내면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올해 김치는 내가 직접 키운 배추로 담근 거야.”

그 말 한마디면 지난 몇 년간의 실패가 모두 보상받을 것 같습니다. 올해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120포기를 심었으니 60포기만 제대로 건져보자.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농촌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 재미는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벌레를 살피면서 기다립니다.

그리고 몇 달 뒤 수확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성공하면 기쁘고 실패하면 다음 해에 다시 도전합니다.

저 역시 몇 번이나 실패했지만 또 배추를 심었습니다. 이번에는 꼭 성공해서 “올해 김장은 내가 키운 배추로 한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가을이 깊어지고 배추밭에 속이 꽉 찬 배추가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는 날을 기다려봅니다. 그리고 그날에는 아마 배추 한 포기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 올해는 제대로 키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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